[주간생활정보]사과문

지난 2018년 1월 12일자 p26의 “출소 앞둔 JMS 교주 정명석, 호주 침투 가능성은?”이란 타이틀의 기사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모 신문사의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니 추후 어떤 매거진도 이 내용을 근거로 인용 보도할 수 없습니다. 이 기사로 인해 기독교복음선교회 및 선교회 정명석 총재의 명예와 인권을 훼손하여 선교회측과 선교 회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어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합니다.

 

정명석0518

주간생활정보 2018년 1월19일

 

내용 더 보기

월명동 자연성전,하나님 구상·성령님 감동,예수 그리스도 보호, 정명석 총재와 제자들이 기술 실천

[원제] 건축의 새 길을 내다

사람들은 늘 길을 떠난다. 새로운 곳에 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매년 연휴 때마다 인천공항이 역대 최다 이용객 기록을 갈아 치우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길을 떠난다. 특히 현대까지 남아있는 고 건축물들에는 우리가 아는 상식을 벗어난 사연과 사람, 역사가 많이 숨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지켜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매번 발길을 옮긴다.

필자가 건축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건축에 담겨있는 건축가의 정신 때문이다. 고대에는 신을 중심으로 한 사상 때문에 주로 신전 건축 양식이 많았다. 서양건축사의 대부분이 기독교교회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간중심주의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신을 위해 건축하지 않았다. 특히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전람회장, 사무소 건축 등이 주를 이루어 구조, 기능, 미의 측면을 강조한 건축은 인간을 보다 편하게, 가깝게, 세련된 건축의 중심에 놓았다.

지금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만지고 살아가는 모든 건축물들이 이에 해당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자연과 친화적 건축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자연을 깎고, 버리고 인공물들을 건축하던 시대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공감하는 건축으로 시선을 향하는 것이다.

건축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건축물 그 자체로만이 아니라 역사를 따라 쉼 없이 변하기도 하고, 한 나라의 랜드마크가 되어 사람들에게 사연과 추억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르네상스의 흐름을 따라 인간중심으로 살고 있다.

주로 서양의 기독교교회 건축물에 익숙한 필자를 잘 아는 지인이 자신만만하게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 건축물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심지어 국내에 있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따라 나선 길에 필자는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만나게 된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인을 따라 충청남도의 한 곳으로 갔다. 그곳은 종교계에서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라 불리며 익히 알려진 곳으로 ‘월명동’이라고 한다. 대둔산, 인대산, 천둥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지형으로 8개의 산맥이 맞닿은 곳이다.

월명동의 옛 명칭은 ‘달밝골’로 달이 밝은 골짜기를 뜻한다고 한다. 이름처럼 달이 밝게 보일 정도로 오지이며 고지대였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이제껏 보지 못한엄청나게 큰 돌들이 있었다.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종교 건축물이니 당연히 성당이나 교회 같은 건물을 예상했던 필자로서는 첫 인상부터 가히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건물의 천장과 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 감싸 안듯이 동그랗게 둘러싸인 공간…,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었다.

정명석0518

▲ 아름다운 잔디밭 전경

 

근대 교회건축의 선구자인 루돌프 슈바르쯔(Rudolf Schwarz)는 ‘산은 벽이요, 언덕은 출입구, 벌판은 바닥, 개울은 길’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표현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존재하리하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던 필자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전, 즉 하나님의 전, 자연성전입니다. 저희는 하나님을 건물 안에 모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곳의 건축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상을 받아 건설되고 있습니다.”

종교건축은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필요한 공간의 충족으로 교회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하나님을 위한 건축으로의 교회는 건축가들의 심혈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다른 건축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소위 알고 있는 교회 건축물의 역사는 306년 그리스의 테살로니카 성전을 시작으로 333년 이탈리아의 성 베드로 성당, 현대 스페인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건물 속에서 신을 만나고 모셨다.

그 중 가장 큰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 중앙 통로 길이가 186미터, 폭 140미터, 제단에서 돔까지 46미터 그리고 바닥에서 종탑까지가 137미터 규모다.

이에 비해 자연성전은 입구의 문턱바위에서부터 시작해 믿음 산, 동그레 산, 전망대, 조산, 서낭당, 그 전체가 성전을 이루며 크기는 약 5만 평 정도, 즉 사각으로 대충 계산해도 한 면이 1,300미터 정도 된다.

동그랗게 감싸는 지형이니 1,300미터짜리 트랙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천장벽화가 있고, 그 높이가 45m라고 하지만 자연성전은 천장이 하늘이니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명석0518-1

▲ 전설이 담겨있는 풍수

 

사방 벽에 세로로 세워져 있는 돌 조경들은 벽을 이루는 벽화라고 했으며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의 의자가 된다고 했다. 돌 조경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나타내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길을 따라 나서면 오직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흙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돌들의 성전, 그것도 천장이 없고 벽화로 둘러싸여 돌, 흙, 물, 나무가 조화를 이뤄 신을 모신다는 곳.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다시 신(神) 중심주의가 아닌가!

필자는 정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현대에서 아직도 신을 신으로 보고, 신을 신으로 모시고, 신을 신으로 섬기는 곳이 이 지구에 존재한단 말인가!

고대에는 신을 두려워했고, 중세에는 신과 인간이 대립했고, 근대로부터 현대에는 인간이 신이 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신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오직 신을 위해 전을 짓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정명석0518-2

▲ 신비로운 연못

 

이곳은 1989년부터 건축 중이라고 했다. 모든 과정을 지휘하며 직접 건축하고 있는 정명석 총재가 기도 중에 “돌로 이같이 쌓아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신이 보여주신 모습대로 건축하고 있다고 했다.

경이로움까지 드는 그곳에 대해 한 마디로 설명해 달라 하니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곳”이라 했다. 웅장함은 큰 돌로 쌓아서이고, 신비함은 그 돌들을 세로로 쌓은 것이고,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돌을 세워 쌓은 곳은 없다고 했다. 그것도 이렇게 큰 돌을 세워서 쌓은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필자도 많은 건축물을 봐왔지만 돌을 세워서 쌓은 돌 조경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돌과 흙, 물과 수많은 나무가 어우러져 하늘만 바라보는 곳은 필자를 마치 전설 속 무릉도원에 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벌써 건설을 한지 27년이 지났는데 역사 속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그러했듯이, 더욱이 큰 돌들을 세워서 쌓는 이 건축 기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위해 죽었을까?

중국의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라 불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슬람 건축의 백미 타지마할, 유럽의 성당들, 우리가 줄을 서서 찾아가는 모든 유적지들은 어쩌면 피의 건축물들이다. 그 피들이 그 나라의 후대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명석0518-3

▲ 삼위의 시대 야심작 작품

 

그런데 월명동 자연성전에서는 단 한명의 죽음도 없었다고 한다. 자칫 움직임이 둔하기만 해도 대형사고로 이어져 죽을 수 있는 크기의 돌들임에도 이 돌들을 쌓기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눈빛에서 거짓을 찾기는 어려웠다. 필자가 이 시대에 신본주의가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건설을 지켜보며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신의 전을 바라보면서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연성전 돌 조경의 백미 야심작에 ‘이 모든 구상은 하나님, 감동은 성령님, 보호는 예수 그리스도, 기술 실천은 나와 제자들’이라고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 조경의 중심에는 ‘생명을 사랑하라’고 새겨진 돌이 서 있었다. 과연 신의 거하심, 신의 보호가 동(動)할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

지구 세상에 신본주의가 다시 시작된 곳이 있다면 이곳 월명동 자연성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 또 수백 년이 흐르면 가톨릭의 어느 성당처럼, 이슬람의 어느 성전처럼, 이곳에도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어 지금 필자가 느낀 감동과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정명석0518-4

▲ 2017 감사 행사

 

내용 더 보기

[사건의 내막] 정명석 JMS 총재 너무 억울하다

정명석0518

“정명석 JMS 총재 너무 억울하다”

민정誌 기자 11년 추적… 사건의 진상

1990년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창립했던 정명석 총재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상태이다. 대법원으로부터 10년형을 확정 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정명석 총재와 관련된 재판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 사건이 재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월간 (민정) 2월호는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는 왜?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라는 글에서 이 재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 너무 억울하다고 지적했다.

정명석0518-1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사진) 관련 사건을 추적한 월간 <민정>지의 내용(왼쪽)과 정명석 총재 친필 편지(오른쪽)

 

이 잡지의 차진수 기자는 이 기사에서 이 사건을 태몽시켰던 원초적 문제를 첫 이슈로 삼았다. 그가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쓰게 된 것은 최근의 관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 것은 11년 전인 셈. 이 기사를 지난 11년간에 걸쳐 추적 보도한 차 기자는 1995년부터 경찰을 출입한 현역 기자이다.

1995년부터 경찰출입 기자

차 기자는 이 기사에서 “본 기자는 이 종교단체에 대한 방송 보도가 시작될 때부터 현장취재를 했다. 1999년 당시 이 종교단체는 방송사의 보도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다. 당시 A방송사는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이 교인을 납치했다고 보도한 일명‘황양납치사건’을 보도했다. 그러나 기자가 경찰조사를 취재한 내용은 납치가 아닌 단순 폭행사건이었다. 폭행사건과 납치사건은 그 형벌자체가 크게 다른 사건이다.

 

기독교복음선교회 창립 정 총재 현재 교도소 수감상태

“JMS 정명석 총재는 왜?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보도

이렇게 사실적인 것을 확인해 <경찰 저널>에 기사가 나가자 당시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문제 제기자(원고의 배후에서 고소 대행 등의 역할을 했던 배후인물인데, 여기서는 기사의 성격상 임의대로 문제 조 기자로 일괄 표기함)가 전화를 걸어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를 했다. 항의 내용은 “왜 납치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기사를 했느냐”였다. 기자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천안 경찰서에서 조사한 것을 확인하였기에 사실대로 기사화하였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만나서 대화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 장소까지 잡아놓고 오기로 했던 <문제 제기자>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전화를 걸어 “왜? 오지 않느냐”고 하자<문제 제기자>는 그냥 가기 싫어서 돌아간다는 무책임하고 황당한 말을 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라고 기술했다.

차 기자가 두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A 방송의 왜곡보도에 대한 사항이다. 그는 ‘A 방송은 정명석 총재가 성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라는 방송을 한 것이다. 방송사는 1995년 주일예배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설교의 원본 내용 중 “생명의 십일조 열의 하나를 전도하라”는 정 총재의 설교를 <열의 하나>라는 음성을 흔들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도록 변조하였고, 자막에는 <여자 하나>라고 자막을 넣어, 방영하였다면서 “이 부분은 시청자들이 ‘정명석 총재가 이성적인 문제가 있는 지도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도록 한 내용이었다. 그뿐 아니라, 당시 방영된 내용 중, 예배 장면이나 행사 때의 모습은 남녀가 같이 있었지만, 여성들만 화면에 나오게 편집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정명석 총재가 여성들만 상대하는 교주라는 느낌을 주었다”고 폭로했다.

A 방송 보도 오류로 판명

차 기자는 세 번째로 A 방송의 편파 보도 결과가 그 당시 법적으로 오류로 판명됐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편파적인 보도에 대해 법원은 결국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주 내용으로는 <문제 제기자>들의 일방적인 제보 자료를 방송에 써서는 안 되며, 방송 48시간 전 고지할 것과 방송분의 5%를 보장하여, 반론 보도를 할 수 있도록 하라. 또한 이를 어길 시에는 건당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이었다. “편파방송의 오류를 법적으로 인정한 이 결정은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이미 여론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힌 정 총재는 계속하여 언론의 도마질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적시됐다.

차 기자의 네 번째 이 사건에 대한 이견(異見)은 성적 피해를 주장한 4명의 여성을 내세운 기자회견이다. 그는 “2006년 4월 18일 <문제 제기자>는 피해를 주장하는 4명의 여성들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상이 JMS에 대하여 잊혀갈 즈음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자들은 정의의 편에서 노력한다는 <문제 제기자>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의 깊이를 알기 위해 조사해왔던 박모 목사는 “문제 제기자에게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며 <문제 제기자>가 합의를 명목으로 20억 원을 요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내용을 접한 B 방송 기자는 기자 회견에 문제가 있음을 가늠하고 취재를 접었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자들 또한 안티 JMS를 이끌었던 <문제 제기자>의 행동에 신뢰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차 기자가 다섯 번째로 정 총재 관련 재판이 잘못됐다고 보는 이유는 성폭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는 당시 <문제 제기자>의 주장에 따리면 여성들은 “심한 성폭행을 당해 거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 하혈을 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법정으로 옮겨진 후, 이 진술과는 달리 피고의 변호인은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당시 CCTV를 보면, “이 두 사람은 피해자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고, 걸음걸이 또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하였다”면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성폭행 피해를 보았다며 법정 고소를 함께 진행해왔던 C 모양이 위증을 했다는 선언을 하고, 고소를 취하한 것이다. C 모양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법정에 나와 경찰과 검찰 진술을 번복하며, 피해 사실을 완전히 부인하였다. 재판부는 [증인이 고소 내용과 다르게 진술을 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였지만, C 모양은 처벌을 받아도 좋다. 자신과 같이 고소한 D 모양도 강간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문제 제기자>의 사주에 의하여 허위로 고소를 하고, 지금까지 허위 진술을 한 것이다”라고 명백히 밝혔다. 고  원고 중의 한 사람이 법정에서 진술한 사실을 적시했다.

문제 제기자의 반성 편지

차 기자는 여섯 번째의 이유로 정명석 총재가 재심을 받을 만한 이유가 될 새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문제 제기자>는 1999년 11월 15일에 정명석 총재님을 음해하고 추문을 실어 불명예를 입히고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깊은 반성을 한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작성하고 인증까지 하여 선교회에 제출한 사실이 있었고, 2006년 3월 17일, 7월 21일은 정명석 총재에게 두 차례 사과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 일부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오해를 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을 준 점을 사과드린다”는 내용과“지난 6년간 총재님에 대해 <문제 제기자>와 회원들 (문제 제기자가 만든 단체)이 오해하여 명예를 훼손하며 모욕을 드린 점에 다시 한 번 더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문제 제기자> 자신의 자필 편지에는 인감 날인되어 있고, 인감 증명서와 자신의 사진을 첨부하여 정 총재에게 보낸 내용이었다”라며,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이 사건을 추적한 후, 쓴 이 기사의 결론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도 비종교의 잣대로 종교 행위를 가늠하면 해괴한 그림을 만들어 내듯이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하여 공소만을 위한 것보다 “백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무죄추정원칙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재판부는 증거와 증인이 애매한 이 사건을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결과에는 심리를 맡은 재판관들 역시 종교에 대한 이해부족과 억지적으로 조성된 여론에 의해 판단이 흐려지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봄으로써 정 총재의 억울한 부분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기자는 “법정 증언에서 이미 상당부분 밝혀졌듯이 <문제 제기자>가 합의금을 요구했던 상황이 있었던 만큼, 돈을 목적으로 고소인들을 관리하듯 하여 고소인들을 조정한 배후에서 의도적으로 문제를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도, 냉철하게 집고 조사해야 할 일”이라고 총평했다.

정명석 총재는 2005년 8월 3일 <문제 제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번 편지 받고 반갑고 마음 감동되어 편지 쓰게 되었다. 사랑하는 애인도 싸우면 원수가 되는데, 예수님 말씀대로, 싸우면 누구든지 원수 되고 마음 괴로운 것이고, 피차 마음 괴롭고 해만 되는 것”이라면서 “6년 동안 나의 근심과 갖은 고통이 되었으며, 그 해 받음은 온 세상까지 미쳤는데, 또 네가 생각해보니 나는 나쁜 자가 아니라고 말까지 해놓고, 돈을 요구한다면, 내 생각이 또 깊기만 하다”라는 답장을 보내며 합의를 거절했다.

예수의 죽음 상기할 필요

차 기자는 정명석 총재와 관련된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 이유에 대해 “핵심은 친고죄(성폭행 혐의)라는 점을 이용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관리하며 그들로 하여금 고소하게 하고 그들 모르게 거금 20억을 요구한 뒤 합의를 끌어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반의사불벌죄를 이용 합의에 맞추어 소를 취하하려 했던 계획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제 제기자>가 정명석 총재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던 인터넷 사이트는 2월 15일 현재 초기화면에 “안티 사이트의 폐쇄를 예고하는 예고문을 올렸고, 도메인도 파기할 것”이라고 고지했다.

정 총재측이 최근 드러나고 있는 새로운 증거나 판결을 번복할만한 새 자료에 따라 무죄를 구하기 위한 재심을 청구할 경우,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에 따라 종교를 창립, 이끌어왔던 종교 지도자인 정명석 총재와 관련됐던 이 사건은 재심을 통한 새로운 판결 구하기의 상황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미 ‘문제 제기자’를 포함한 원고들의 제소 내용이 맞다고 승소-판결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재심에서 번복될지의 여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도 억울한 재판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지난 11년간에 걸쳐 이 사건을 추적 보도한 기자의 끈질긴 취재에 따른 사실과 증거제시에 따른 폭로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정명석0518-2

내용 더 보기